양무리교회 - London Yangmoory Korean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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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도
04-07 21:23 | HIT : 2,100
기도

1.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 눅11:1-4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라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이 간단한 요청에 대해 예수님이 주신 답변은 ‘주기도’라고 부른다. 이 기도는 기독교 전 시대에 걸쳐 가장 위대한 기도의 모범이 되고 있다.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
‘너희가 기도할 때에’라고 말씀은 이 기도가 제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후에 따라올 모든 크리스챤들을 위하신다는 의미다. 2천년이 흐른 오늘날도 성공회, 캐톨릭, 감리교, 침례교, 장로교 등 많은 다른 이름의 교파들이 존재하지만 이 기도는 공통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주기도는 더 깊은 차원에서의 의미가 있는데 이것이 주기도의 가장 핵심이 된다.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아바” 라는 단어로 시작하셨는데 “아바”란 어린 아이가 아버지를 부를 때 사용하는 ‘아빠’와 같은 단어이다. 하나님을 “아바”라고 부르심으로 예수님은 모든 이론의 영역을 넘어, 하나님이 진정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이해로 텀벙 뛰어들게 만드신다. 예수님이 보이려고 하신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실제하시며” “인격”이라는 것이다.

기도에 있어 우리의 첫번째 과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살아계신 실제 인격자로서 우리의 아빠, “아바”가 되도록 모시는 것이다. 이 일이 되기 전까지 기도란 그저 형식만 갖춰주는 예식 이상 생생한 산 경험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주기도는 원천적으로 나 자신을 위해, 나의 아버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임을 언제나 인식해야만 하는 것이다.

토론
내가 가진 기도에 대한 태도를 점검해 보자. 나는 기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기도는 (필수다/ 도움이 된다/ 종교인에게 좋은 것이다/ 어려울 때 유용하다/ 별 상관 없다).
나는 기도하는 것이 (쉽다/ 어렵다/ 도움이된다/ 무덤덤하다/ 실제적이다/ 비현실적이다).
나는 기도를(자주, 가끔, 전혀않음); (집에서, 교회에서, 언제든지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기도한다. 서로의 답을 비교하여 보자.

2. 이름이 거룩히 여기을 받으시오며. 요17:1-4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주기도는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일 뿐 아니라, 모든 기도의 모범이 된다. 그 이유는 이 기도속에 천부와 그의 자녀 (하나님과 우리) 간의 온전한 관계에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자녀라면, 아버지가 나의 요청을 들어주시며 내게 도움을 주실것에 대한 기대를 갖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서, 만일 아버지의 뜻이나 계획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자녀라면 이는 매우 철없는 이기적인 자녀가 될 것이다. 주기도는 바로 이러한 관계에다 핵심을 두고 시작한다. 나의 필요를 내세우기 앞서 먼저 하나님의 관심에 나 자신을 일치시키는 자세가 우선이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러므로 주기도의 첫번째 간구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유지되며 영광을 받으시기를” 구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당대에 널리 통용되던 “아라믹”이라고 불리운 언어로서 말씀하시는데 주기도에 나타난 이 첫번째 간구는 유대인들이 예배를 마칠 때 부르던 아라믹 송영 “카디쉬” Kaddish 에 이렇게 나타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창조된 이 세상에서, 그분의 위대하신 이름이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옵소서.” 특별히 주목할 것은 바로 “이 세상에서”란 대목이다. 세상이란 우리 인간들의 활동무대요 여기가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장소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체포되시기 직전에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실 때 품으신 생각이 바로 이것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우리도 역시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신실하게 붙듦으로서 그분의 이름을 높이게 된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우리가 받은 소명을 성실히 행함으로서 성취되어 가는 것이다.

토론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이 땅에서의 소명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고 그 소명을 들어서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라는 예수님의 기도를 나 자신의 기도로 만들어 보자.

3 뜻이 이루어지이다. 마26:36-4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다시 두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다시 오사 보신즉 저희가 자니 이는 저희 눈이 피곤함일러라- 또 저희를 두시고 나아가 세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신후-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웠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일어나라 함께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 또한 그분의 뜻이 이뤄지기를 기도한다고 하면 그는 반드시 이 일이 자신의 삶 가운데서 일어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뜻에 일치가 된다는 일이 항상 힘겨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손실이나 고통을 수반한다면 그때는 이야기가 분명 달라질 것이다. 이러한 정황속에서조차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
우리는 여기에 대한 예를 오늘 본문에서 생생하게 관찰하게 된다. 예수님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고난으로 차 있다는 사실을 아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육체적 고통과, 자신이 구하러 오신 인간들로부터 정작 거절받게 되는 정신적 고통을 생각하며 “심히 고민하고 슬퍼”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고난이 자신을 비껴가기를 기도하셨다. 그러나 이것들이 예수님 기도의 최종 관심이 아니었으니, 주님께서는 “할수 있다면”이란 말씀과 함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라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토론
현재 내게 있는 기도의 중요한 제목은 무엇인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란 확신이 없다면 그 기도를 과연 어떻게 수정할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해 보자

기도
주님, 제자들을 가르치신 것 같이, 나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 주님, 당신의 뜻을 밝히 알아, 그 뜻을 잘 따를 줄 알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를 도우사 우리 마음의 모든 생각과 입술의 말과 행동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게 도와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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